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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탈의 기록

6월에 제주도 혼자 여행하기 7

by 수즈 2015. 9. 13.

제주에서의 마지막 밤, 석양을 뒤로 한 채 나는 고민을 하고 있었다.

이 시를 아시는지 모르겠다.

 

가장 훌륭한 시는 아직 쓰여지지 않았다.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려지지 않았다.

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

 

가장 넓은 바다는 아직 항해되지 않았고 불멸의 춤은 아직 추어지지 않았으며 가장 빛나는 별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별.

 

무엇을 해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 비로소 진정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

 

어느길로 가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 때가 비로소 진정한 여행의 시작이다.

 

터기의 시인, 나짐 히크메트의 진정한 여행.

 

 

그렇다. 마지막을 앞두고 나는 망설이고 있었다. 제주에서 마지막 날에 무엇을 하면 좋을까를. 그때 아주 멀리서 우뚝 솟은 한라산이 나에게 손짓을 보내고 있었다.

드루와 ~~~

 

 

거짓말이다. 내가 있던 곳에서는 한라산이 보이지도 않았다. 아무튼 나는 그때 갑자기 한라산행을 결정했다. 그리고 게스트 하우스 조식을 취소하고 ( 다행히 5000원을 돌려 주셨다 )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한라산 성판악 주차장으로 네비를 찍고 시원하게 달렸다. 가다가 오토바이 기름도 없어서 마지막 날임에도 불구 하고 5000원치 기름을 넣어주었다. (내 조식을 이놈이 먹은 셈)  반납할 때 기름을 채우지는 않아도 되지만 왠지 중간에 기름이 모자랄꺼 같은 걱정에 5000원치를 넣었는데 게이지가 엄청 올라갔다. 도로 빼 달랠수도 없고.

 

 

시원한 새벽을 달려 도착한 성판악 주차장. 검색을 해보니 백록담을 보려면 이리로 와야 한데서 가까운 코스를 놔두고 여기까지 왔다. 한라산은 고등학교때 그리고 군대에 있을 때도 와봤지만 언제나 백록담을 보지 못한채 내려가야 했다. 누군가 그랬다. 백록담을 보려면 삼대가 덕을 쌓아야 한다고. 하지만 오늘은 무슨일이 있어도 꼭 보고 말리라.

 

 

혼자 각오를 다지면서 성판악 주차장에 오토바이를 주차하고 주차 관리소에 500원을 주고 주차티켓을 끊었다. 사실 안그래도 모를 꺼 같았지만 그러면서 관리소에 모든 짐을 맡겼기에 (사실 이게 목적) 나쁘지 않았다. 관리소에서는 등산객들 짐을 맡아준다. 물론 돈도 안 받는다. 종이에 이름써서 가방에 붙여두면 된다. 

 

 

입구 식당에서 든든하게 김밥과 우동을 챙겨먹고 혹시나 몰라서 초코바와 여행도중 만났던 이가 주었던 우비까지 뒷 주머니에 쏙 넣고, 손에는 작은 생수병 하나 들고 산행 준비 완료.

 

 

 

 

 

한라산 속으로 들어가는데 앞에 어머니와 딸, 두 일행이 올라가고 있었다. 딸 끼리 친구인거 같았는데 나는 첫번째 휴게소에 도착 할 때 까지 어쩔 수 없이 이들의 대화를 들으면서 가야 했다. 나름 심심하지 않고 재미있었다. 사이가 좋은 가족은 언제나 보기 좋다. 나중에 산을 내려갈 때 다시 마주쳤는데 인사를 하기도 애매해서 그냥 지나쳤는데 뒤에서 '같이 올라온 그사람 아니야 벌써 내려가네' 하는 소리가 들렸다. 일행 아닌 일행 느낌.

 

 

 

    

 

 

진달래밭 대피소. 아직까지 날씨는 정말 좋다. 예전에 왔을 때 비에 젖어서 여기서 컵라면 먹었던 기억이 생생한데. 비싼 가격과 아래 사진을 보고 그냥 나는 챙겨온 초코바나 먹으며, 남 먹는거 보면서 대리만족 했다.

 

     

쓰레기통 없으니 다 들고 내려가야 한다. 난 쓰레기도 없다. 아니 휴게소에서 이것저것 먹고나면 어떻게 하라는 건지. 그래서 가방을 챙겨가는 건가.

 

 

    

 

 

아니 뭐 이렇게 날씨가 좋은지 모르겠다. 내 예전기억은 정말 전투를 하다시피 산을 눈,비를 뚫으면서 올라왔고 옆에는 낭떠러지도 있었고, 중대장이 시야가 더이상 안보이니 그만 내려가라고 했고, 정상을 보지 못한 채 발길을 돌려야 했으며, 그날 밤 한라산에서 실종자가 생겼다는 뉴스가 나왔었다.

 

 

내 기억이 왜곡된건가 싶을 만큼 한라산은 창창했다. 그리고 산행길도 십년전에 왔을 때랑은 많이 바껴서 너무 잘 정비되어 있었다.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더니. 이젠 동네 뒷산처럼 친근한 느낌이다.

 

 

구름이 나보다 밑에 있다.

 

 

마치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았다. 이런 풍경은 우리나라에서도 한라산이 아니면 볼 수 없는 느낌인것 같다.

 

 

 

올라가는데 어떤 여자가 나에게 뭐라고 속삭인다. 나는 그때 숨을 헐떡이고 있었기에 '뭐라는 거지' 하고 속으로 생각하며 지나쳤다. 혼잣말한거 같기도 하고 힘들어서 욕한거 같기도 하고...그랬는데 그 뒤로 만난 사람들 모두가 산을 내려오면서 나에게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한다. 이게 무슨 문화야... 그때서야 그 여자가 수줍게 나에게 인사를 건넨것과 내가 쌩까서(?) 얼마나 무안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니 나는 상상도 못했다. 산에서는 모르는 등산객이 간접적인 동료가 될 수도 있음을.

 

 

드디어 정상 도착. 여기서 사진 한컷 찍고 싶었는데 핫플레이스라 그런가 사람이 끊이지를 않았다.

 

 

 

    

 

내가 그토록 보고 싶었던 백록담이다. 어라 이게 아닌데. 난 더 웅장한 느낌을 원했다고. 물이 많이 말랐다. 사람들만 아니었으면 내려가서 물을 떠마시고 싶었는데 주목 받고 싶지는 않았다.

 

 

 

 

 

 

정상에 서니 정말 가슴이 뻥 뚫린 느낌이었다. 시간을 재면서 왔는데 기억이 안난다. 다만 점심 무렵에 도착을 했고 나는 큰 궁금증 하나를 해결했다. 그게 뭐냐면 올라올 때 사람들이 다들 배낭을 메고 올라오는게 이해가 안 되었었다. 안 그래도 힘든데 뭐하러 짐을 다 챙겨서 올라 오는 거지 라고 생각했다.

 

 

 

 

정상에서 사람들이 배낭에서 도시락을 꺼내기 시작한다. 술도 나온다. 삼삼오오 둘러앉아 점심을 먹는다. 와 이게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한라산 정상에서 먹는 밥이라니, 그리고 술 한잔 이라니. 이런 풍경을 보면서 말이다. 나는 결심했다. 다음에 올때는 꼭 배낭을 메고 올라 오리라.

 

 

 

내려가는 길. 한라산은 현무암이 많고 울퉁불퉁한 돌들이 많아서 나처럼 운동화 신고 오면 다리보다 발바닥이 더 아프다. 꼭 등산화를 챙기시길.

 

 

 

    

 

산을 내려와 오토바이를 반납하러 시내로 들어왔다. 시내에서 오토바이를 타는 건 정말 위험했다. 차들이 빨리 안가냐고 성화에다 차들 사이에서 매연을 다 먹어야 했다. 햇빛 때문에 네비도 잘 안보이고... 오토바이는 시내에서 신속하게 최단거리로 반납을 하기를 추천하고 싶지만 길도 잘 모르고...

 

 

 

무사히 오토바이를 반납했다. 혹시나 오토바이로 트집을 잡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여행 잘 하고 오셨나요 라는 말에 마음이 녹아 내렸다. 가볍게 밥 먹으로 이동 중에 닭들이 줄 서서 가고 있길래 한컷 찍었다. 제주에서 마지막 전복 해물탕을 먹은 뒤

 

    

 

한라산 오르느라 땀에 쩔은 나에게 휴식을 주었다. 뜨거운 탕안에서 쉬고 있는데 여기저기서 들리는게 중국말들 뿐이라 먼가 낯설다.

 

 

 

저 멀리 제주공항이 보인다.

면세점에 들려 담배 한 보루를 선물로 샀다. 계산 할 때 비행기 티켓을 보여줘야 했다. 한사람당 한 보루만 판다. 가격을 보니 그럴만도 했다. 이놈의 세금...

 

    

 

비행기 이륙전 마지막 제주를 찍어본다. 재미있는 여행이었는데 그래도 떠날려니 무언가 아쉽다. 6월에 제주를 보았으니 다음에는 또 다른 달에, 또 다른 계절에 여행 와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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